성요한 세레자의 수남 기념일
“여자에게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마태 11,11). 예수님의 이 말씀처럼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에 앞서서 그분의 길을 닦고 준비한 위대한 예언자다. 이러한 요한은 헤로데 임금의 불륜을 책망하다가 헤로데의 아내 헤로디아의 간계로 순교하였다(마르 6,17-29 참조). 세례자 요한의 수난과 죽음을 기억하는 것은 4세기 무렵 그의 유해가 있던 사마리아의 지하 경당에서 시작되었다.
입당송 시편 119(118),46-47 참조
본기도
제1독서
<내가 너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말하여라. 너는 그들 앞에서 떨지 마라.>화답송시편 71(70),1-2.3과 4ㄱㄷ.5-6ㄱㄴ.15ㄴㄷ과 17(◎ 15ㄴㄷ 참조)
복음 환호송마태 5,10
복음
<당장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저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예물 기도
감사송
<선구자의 사명>영성체송 요한 3,27.30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입니다. 그런데 복음에서 요한의 죽음 자체는 아주 간략하게 서술됩니다. 그가 죽을 때 무슨 말을 하였는지, 어떻게 죽음을 받아들였는지도 일러 주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어처구니없는 죽음입니다. 요한의 입장에서 생각하였을 때, 차라리 헤로데가 처음부터 그를 죽이려고 하였다면 죽는 이유가 더 명백하였을 것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오히려 요한의 주장이 더 두드러지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헤로디아가 요한을 죽이고 싶어 하였을 때까지도 헤로데는 요한을 보호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헤로디아가 헤로데를 설득해서 요한을 죽게 만드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약속한 선물을 주려고 요한의 목을 가져오게 합니다. 헤로디아의 딸이 춤을 추고 나서 반지 하나를 달라고 하였든 요한의 목을 달라고 하였든 헤로데는 똑같이 행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요한을 죽일 어떤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헤로디아가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을 주려고 죽였을 뿐입니다. 그리고 경비병은 감옥에 가서, 마치 반지 하나를 가져오듯이 담담하게 요한의 목을 베어 들고 옵니다.
그러나 경비병이 감옥으로 요한을 찾아간 날, 요한은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것이 어떤 식으로든 그가 맞게 될 예언자의 운명이었기 때문입니다. 정당한 명분으로는 요한을 죽일 수 없었기에, 불의는 어떻게든 진리의 목소리를 죽이는 길을 찾습니다. 요한은 그에게 걸맞지 않은 이유로 소리 없이 죽임을 당하지만, 이것은 오히려 그가 죽어야 할 이유가 없었음을 보여 줍니다. “그들이 너와 맞서 싸우겠지만 너를 당해 내지 못할 것이다”(예레 1,19). 요한은 헤로데에게 꺾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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