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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21일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

rps041 2024. 9. 21.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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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페소 4,1-7.11-13     마태오 9,9-13

자비를 입은 사람은 자신이 죄인임을 결코 잊지 않는다


 
덴마크의 유명한 조각가들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님의 상을 만들려는 열정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승리한 왕과 같은 형상을 조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머리는 뒤로 젖혀있고, 두 팔은 위엄 있게 하늘을 향해 들려져 있었습니다.
왕이신 그리스도의 강하고 권위 있는 모습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조각상이 완성되던 날 “이것이야말로 나의 걸작이 될 거야.”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그 날 밤 짙은 안개가 그 지역에 끼여, 물보라가 조각가 방의 열려진 창틈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습기가 조각을 상하게 하여, 아침에 본 조각은 매우 손상된 모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조각에 붙은 물방울들은 마치 그리스도의 피를 연상케 했습니다.
머리는 숙여져 있었으며, 얼굴 표정은 엄격한 얼굴에서 동정 어린 모습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두 팔은 모든 사람을 환영하듯이 축 내려져 있었습니다.

이 조각가는 그 형상을 바라보며 다시 시작할 생각을 하니 낭비된 시간이 아깝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신비한 힘이 그의 마음을 변화시키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진정한 모습이 바로 이 모습임을 깨달았습니다.
그 후 새롭게 만들어진 상에다 이렇게 써 붙였습니다. “내게로 오라!”

우리가 기대하는 예수님은 어떠한 모습이신가요?
십자가에 달려 팔을 벌리신 예수님만큼 예수님의 본성을 잘 표현하는 모습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승리의 예수님이기보다는 자비의 예수님이시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자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한 식탁에 앉으신 이유는 무언가 보여주시기 위함만이 아닙니다.
하늘나라에서도 주님의 식탁에는 죄인들밖에 없을 것입니다.

의인들은 예수님의 식탁에 앉을 수 없습니다. 
의인들은 예수님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로 가시고 그들과 함께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주실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자비’입니다.
그 자비를 필요로 하지 않는 바리사이들은 그래서 그분과 한 식탁에 앉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라고 하십니다.
정말이지 자신이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큰일입니다.

고 임언기 신부님이 한 말기 간암 환자에게 병자성사를 주러 가셨습니다.
그 환자는 오랜 냉담을 하고 있었고 친척들이 신부님을 부른 것입니다.

그러나 환자는 한 마디도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결국 어쩔 수 없어 신부님이 일어설 때 그가 신부님의 등 뒤에서 이렇게 소리쳤다고 합니다. “나 죄 없어.”

이 말은 “나는 의인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필요 없다.”라는 뜻입니다.
이런 사람이 정말 죄인인데 그 사람들은 죄를 지었기 때문에 남을 심판하게 됩니다.
남을 심판하면서 자신의 죄책감을 감추어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자신의 죄를 잊어버립니다.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이 죄인들을 심판하고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예수님도 판단하고 있었던 것과 같습니다.
그들은 의사가 필요하지 않은 건강한 이들이었습니다.
구원이 필요하지 않은 지옥의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결코 남을 심판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 자체가 자신이 의인이 되어서 예수님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이 되겠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때에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죄인만 구원받습니다.
우리가 항상 죄인으로 머물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우리 행위가 아니라 본성을 보신다는 것만 기억하면 됩니다.

예수님은 간음하는 것을 보시지 않고 음란한 마음이 있는지를 보십니다.
예수님은 살인하는 모습을 보시지 않고 그 사람 안에서 화가 솟아나는지를 보십니다.
화가 나는 것이나 살인하는 것이나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죄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습니까? 사실 단 한 순간만이라도 하느님께 감사하지 못하다면 그것 자체가 영원히 후회할 죄입니다.

부모에게 감사하지 못하고 원망하는 것이 불효인 것과 같습니다.
겉모양이 아니라 본성이 자신이라는 것만 알면 우리는 결코 자비 없이는 구원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자비를 받은 사람이라야 자비로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다는 것 자체가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죄인이 누구를 심판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기도나 제물이나 봉사가 아니라 바로 ‘자비’ 하나뿐입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세리에서부터 사도가 되었기에 자신이 부르심 받은 이 은총을 기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도 항상 주님의 자비를 노래하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자비를 노래하는 사람만이 결코 이웃을 심판하지 않고 자비로울 수 있습니다.

자비를 입은 사람은 자신이 죄인임을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자비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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